시와글(1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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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사람 만나. 성호승
그런 사람 만나 꾸미고 왔을 때만 예쁘다고 하는 사람 말고, 꾸미지 않아도 예쁘다고 하는 사람 만나. 특별한 날에만 챙겨주는 사람 말고, 사소한 거 하나하나 챙겨주는 사람 만나. 서로 다투게 될 때 자존심 세우는 사람 말고, 대화로 풀어 나 갈 수 있는 사람 만나. 매일 미안하다는 말만 하는 사람 말고, 매일 사랑한다는 말만 하는 사람 만나
2022.06.29 -
내마음. 김동명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 내 마음은 촛불이요 그대 저 문을 닫아 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 내 마음은 나그네요 그대 피리를 불어 주오 나는 달 아래 귀를 기울이며 호젓이 나의 밤을 새이오리다 내 마음은 낙엽이요 잠깐 그대의 뜰에 머무르게 하오 이제 바람이 불면 나는 또 나그네같이 외로이 그대를 떠나가리다
2022.06.25 -
밤. 김동명
밤은 푸른 안개에 싸인 호수 나는 잠의 쪽배를 타고 꿈을 낚는 어부다
2022.06.25 -
국화빵을 굽는 사내. 정호승
국화빵을 굽는 사내 / 정호승 당신은 눈물을 구울 줄 아는군 눈물로 따끈따끈한 빵을 만들 줄 아는군 오늘도 한강에서는 사람들이 그물로 물을 길어 올리는데 그 물을 먹어도 내 병은 영영 낫지 않는데 당신은 눈물에 설탕도 조금은 넣을 줄 아는군 눈물의 깊이도 잴 줄 아는 군 구운 눈물을 뒤집을 줄도 아는군
2022.06.24 -
새들은 지붕을 짓지 않는다. 정호승
새들은 지붕을 짓지 않는다. 잠이든 채로 그대로 눈을 맞기 위하여 잠이 들었다가도 별들을 바라보기 위하여 외롭게 떨어지는 별똥별을 바라보기 위하여 그 별똥별을 들여다보고 싶어 하는 어린 나뭇가지들을 위하여 새들은 지붕을 짓지 않는다. 가끔은 외로운 낮달도 쉬어가게 하고 가끔은 민들레 홀씨도 쉬어가게 하고 가끔은 인간을 위해 우시는 하느님의 눈물도 받아 둔다 누구든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새들의 집을 한번 들여다보라 간밤에 떨어진 별똥별들이 고단하게 코를 골며 자고 있다 간밤에 흘리신 하느님의 눈물이 새들의 깃털에 고요히 이슬처럼 맺혀있다. - 정호승 시집 2009
2022.06.24 -
밥그릇. 정호승
개가 밥을 다 먹고 빈 밥그릇을 핥고 또 핥는다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몇 번 핥다가 그만둘까 싶었으나 혓바닥으로 씩씩하게 조금도 지치지 않고 수백 번은 더 핥는다 나는 언제 저토록 열심히 내 밥그릇을 핥아보았나 밥그릇의 밑바닥까지 먹어보았나 개는 내가 먹다 남긴 밥을 언제나 싫어하는 기색 없이 다 먹었으나 나는 언제 개가 먹다 남긴 밥을 맛있게 먹어보았나 개가 핥던 밥그릇을 나도 핥는다 그릇에도 맛이 있다 햇살과 바람이 깊게 스민 그릇의 밑바닥이 가장 맛있다
2022.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