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글(1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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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일. 김사인
이도 저도 마땅히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2022.09.24 -
끝이 없는 길. 박건호작사 이현섭작곡 박인희 노래
길가에 가로수 옷을 벗으면 떨어지는 잎새위에 어리는 얼굴 그 모습 보려고 가까이 가면 나를 두고 저만큼 또 멀어지네 아 이길은 끝이 없는 길 계절이 다가도록 걸어가는 길 잊혀진 얼굴이 되살아 나는 저만큼의 거리는 얼마쯤일까 바람이 불어와 볼에 스치면 다시 한번 그 시절로 가고 싶어라 아 이길은 끝이 없는 길 계절이 다가도록 걸어가는 길
2022.09.23 -
여름밤. 나태주
깜깜한 여름밤 저녁밥을 먹고 나서도 쉬지 못하는 어머니는 뒤뜰에다가 멍석을 내어다 깔고 식구들의 빨래를 다림질하고 있었다 때로 어머니는 마음씨 고약한 산적 같은 아버지한테 붙잡혀 와 고생고생하며 살아가는 선녀님이 아닐까 생각하는 때가 있었다 엄니, 나 엄니를 위해서라면 무어든지 될래요 엄니가 돈 많은 사람 되라면 돈 많은 사람 되고 높은 사람 되라면 높은 사람되고 공부하는 사람이든 유명한 사람이든 무엇이든 되어드릴 거예요 물컷 들어갈라 어여 문 닫고 나머지 숙제나 하려무나 그런 날이면 나는 어머니의 진짜 아들이었다 밤하늘의 별들은 이름을 얻지 못하고서도 저들 혼자만의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엄니, 별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네요 그러게 말이다 별들이 우리 애기 주먹만이나 하구나 나는 다 자란 뒤..
2022.09.19 -
그 시절 여름. 박인걸
간장 빛 깻잎 장아찌 어머니 손 때 묻은 맛 납작 보리밥 바람에 날릴 것 같아도 볼이 터지던 호박 잎 쌈에 뱃살에 기름 오르고 함석 집 지붕에 분이 얼굴 같은 박이 익고 반딧불이 콩밭 위로 날 때면 은하수는 남쪽으로 쏟아지고 멍석에 누운 소년은 북두칠성을 가슴에 담는다. 내 살던 고향 팔월에는 장독대에 봉숭아 피고 종일 맴 돌던 해바라기 어지러워 뻘쭉해 질 때면 줄 따라 오르던 나팔꽃은 소리 없이 합주를 한다. 가보고 싶은 그 집 굴렁쇠 굴리던 넓은 마당 배추국화 웃던 화단 온통 그리운 것뿐이네 마당가 뽕 나무는 날 기다리다 삭정 됐겠지
2022.09.19 -
고운 시 두편 2022.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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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사랑 내사랑. 오탁번
논배미마다 익어가는 벼이삭이 암놈 등에 업힌 숫메뚜기의 겹눈 속에 아롱진다 배추밭 찾아가던 배추흰나비가 박넝쿨에 살포시 앉아 저녁답에 피어날 박꽃을 흉내낸다 눈썰미 좋은 사랑이여 나도 메뚜기가 되어 그대 등에 업히고 싶다
2022.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