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글(1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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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조각배를 타고. 김인경
내버려 두어라 흐르는 물을 따라 가는길이 어느 곳을 향해가든 그대로 두어라 바람이 부는대로 마음이 머무는곳이 저 바다 끝이 된다 해도 흐린 하늘 뒤로 그리움이 숨어 들어가 구름 뒤에 가느다란 호흡이 빗물에 섞일지라도 묻지 말아라 사랑의 시간들이 아픔이었는지 기쁨이였는지 기다림의 끝이 그물 속에 반짝이는 은빛 생선으로 만선이 되어올지 그 누가 알랴 삶의 조각배를 타고 너른 바닷속 깊이 그물을 친다 소중한 추억의 시간들도 아픔의 시간들도 기쁨의 시간들도 미역 줄거리 처럼 얼키고 설키어 더불어 딸려 올라오는 것을 바닷가 언저리 바위 위에 그물을 부려 아름다운 시간들만 추리어 보자 그속에 담긴 아픔들은 바닷물에 말갛게 씻어 햇빛에 널어 보아야지.
2022.10.13 -
그날. 이일남
늘 바쁜 친구는 어쩌다 전화를 걸면 끝에 언제 한번 보자.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끝에 우리 언제 밥 한번 먹자. 청첩장을 보내도 인사말처럼 미안하다며 끝에 언제 꼭 한잔 하자. 있지도 않은 그날 우리의 약속은 허공에 뜬구름 잡기보다 힘들다.
2022.10.12 -
내가 하고 싶은 사랑은. 윤보영
사랑을 하고 싶다 눈이 맑은 사람을 만나 결 고운 사랑을 하고 싶다. 가슴 가득 아름다운 사연을 담고 사는 달빛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은사시 나뭇가지 끝에 부는 산들바람 같은 사랑을 하고 싶다. 내 시선이 고정되어도 좋을 감동을 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끝이 어딘지 몰라도 될 꿈길 같은 사랑을 하고 싶다. 바라만 봐도 좋아 가슴 뛰게 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좋아해도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는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싶다. 버릇처럼 다짐만 했던 사랑! 이런 사람을 만나 가슴 찡한 사랑을 해 보고 싶다. 동화 같은 사랑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 만날 날을 기다리며 허둥대는 사람이 되고 싶다.
2022.10.12 -
윤보영 시 몇편 2022.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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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인생에 황혼이 들면. 김준엽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나는 나에게 많은 날들을 지내오면서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어 보겠지요. 그러면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사람들을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많은 이들을 사랑해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나는 나에게 많은 날들을 지내오면서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어보겠지요. 그러면 그때 자신 있게 열심히 살았다고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 하여 살아가겠습니다.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나는 나에게 많은 날들을 지내오면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일이 없느냐고 물어보겠지요. 그러면 그때 얼른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나는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아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나는 나에게 많은 날들을 지내오면서 삶이 아름다웠느냐고 물어보겠지요.
2022.10.11 -
세월이 가면. 박인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날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취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2022.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