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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 팥죽. 이영균
저 달은 해마다 동짓날 밤팥죽 싣고 긴 은하수강 건너간다네 애 동지엔팥죽을 쑤지 않아불빛 죽여 숨어 가느라 밤이 어둡고중 동지엔죽 쑤어 사방 나누느라불 밝혀 가느라 은하수 길 밝고노 동지엔죽을 많이 쑤어 차고 넘쳐달빛 가려져 은하수 건너기 캄캄하다네동짓날 죽었다던 망나니 역신팥죽 먹고 오늘 밤만 피하고 나면일 년 동안 무병 한다네작년엔 먹기 싫어새알심이 한 알 남겼는데한살 더 먹고역신 쫓아버리려면올 노 동지엔새알심이 두 알 더 먹어야겠네
2024.12.21 -
동지(冬至). 김옥자
첫눈이 펑펑 내리는 동짓날 마음은 이미 고향 언덕으로 달려가 포근한 어머님 품에 안긴 듯 깊은 밤 참새처럼 지저귀며 구들목에 모여 앉아 형제들끼리 지지고 볶고 함께 즐겨먹던 팥죽의 별미 천지신명님께 조상님에게 자식들의 앞길에 식구들의 건강을 사업의 번창을 빌고 또 비시던 어머님생각 꽁꽁 얼어붙은 길고 긴 이 밤 봄을 기다리는 마음 우리의 미래에 호화로운 삶보다 소박한 꿈을 키우고 싶어요
2024.12.21 -
동지 팥죽의 추억. 문재학
사립문 밀고 들어서면한없이 포근한 가족의 온기초가지붕 위로 피어오르는아스라한 그날도란도란화롯가에 둘러앉아환담 속에 굴리던 새알한 살 더 먹는 나이 수만큼 먹으라는그 새알들. 동지팥죽솥뚜껑 소리에 익어갔다.호롱불에 타던 기나긴 밤문풍지 울리는 설한풍(雪寒風)에자리끼도 얼던 동지 날잡귀 물리치려 집안 곳곳에솔가지로 뿌리던 동지팥죽새하얀 눈 위를 붉게 물들였다.가족 안녕을 비는어머니 지극 정성에 강추위도 녹았다.세월의 강물에 출렁이는꿈결같이 아련한그 시절이 그리워라.
2024.12.21 -
눈꽃. 도종환
잔가지 솜털 하나까지 파르르 떨며눈꽃을 피워들고 서 있는 달밤의 숲은그대로가 은빛 빛나는 암유의 궁전입니다.보름 지나면서 달의 몸 한쪽이녹아 없어진 이유를 알겠습니다몸을 납처럼 녹여 이 숲에 부어버린 것입니다달빛에 찍어낸 듯 나무들이 반짝이며 서 있습니다나무들은 저마다 한 개씩의 공안입니다다보여래가 증명하는 화려한 은유의 몸짓입니다체온이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갔을 때거기서 가장 아름다운 광채가 뿜어져나오고깊고 외롭고 처절한 시간 속에서고요하게 빛나는 적멸의 언어를 만나는 것입니다생의 가장 헐벗은 시간을 견디는 자에게 내린혹독한 시련을 찬란한 의상으로바꾸어 입을 줄 아는 게 나무 말고 또 있으니돌아가 찾아보라고 말합니다돌아가는 동안 부디 침묵하고돌아가 알게 되어도 겨울나무들의소리 없는 배경으로 있어 달라고
2024.12.21 -
건강한 두려움 2024.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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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하심 2024.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