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글(1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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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조미하
살다 보니 탄탄대로만 있는 것이 아니더라 꼬불꼬불 산길과 숨차게 올라야 할 오르막길 금방 쓰러져 죽을 거 같아 주저앉았을 때 밝은 빛이 보이는 등대 같은 길도 있더라 숨 가쁜 인생길 이리저리 넘어져 보니 어느새 함께 가는 벗이 생겼고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고 아껴 주는 아름다운 이들이 함께 가고 있더라 절대 만만치 않은 우리 삶 스스로 터득한 삶의 지혜와 깨우침을 준 내 인생에 참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우리의 내일을 처진 어깨 감싸주고 토닥이며 참 좋은 이들과 함께 가는 동행 길 그 또한 행복이 아니던가
2023.01.01 -
12월 31일의 기도. 양광모
이미 지나간 일에 연연해하지 않게 하소서 누군가로부터 받은 따뜻한 사랑과 기쁨을 안겨주었던 크고 작은 일들과 오직 웃음으로 가득했던 시간들만 기억하게 하소서 앞으로 다가올 일을 걱정하지 않게 하소서 불안함이 아니라 가슴 뛰는 설렘으로 두려움이 아니라 가슴 벅찬 희망으로 오직 꿈과 용기를 갖고 뜨겁게 한 해를 맞이하게 하소서 더욱 지혜로운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바쁠수록 조금 더 여유를 즐기고 부족할수록 조금 더 가진 것을 베풀며 어려울수록 조금 더 지금까지 이룬 것을 감사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삶의 이정표가 되게 하소서 지금까지 있어왔던 또 하나의 새해가 아니라 남은 생에 새로운 빛을 던져줄 찬란한 등대가 되게 하소서 먼 훗날 자신이 걸어온 길을 뒤돌아볼 때 그 때 내 삶이 바뀌었노라, 말하게 하소서 내..
2023.01.01 -
당신과 나의 한 해가 늘 행복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채
신이 강을 이룰 때 이쪽과 저쪽을 가르지 아니하였고 신이 사람을 만들 때 높고 낮음을 정하지 아니하였거늘...! 우리는 어찌하여 강의 이쪽과 저쪽을 갈라서 있고 없고를 따지며 사람의 높고 낮음을 정하여 위치와 거리를 두는지요... 스스로 그늘을 만들지 않는 한 어디에도 햇살은 다녀가고 스스로 가치를 낮추지 않는 한 우리는 누구나 만물의 영장입니다... 강 저쪽에서 바라봐도 찬란한 노을은 언제나 아름답고 출렁이는 은빛 물결에 오늘도 더없이 행복한 마음... 살다가 살다가 어느 날 천국의 문이 열리는 날 우리는 주머니 없는 하얀 옷을 입고 누구나 빈손으로 그 곳으로 가지요. 알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깨닫지 못하는 것도 아니건만 늘 망각의 동물이 되어 욕심만 쌓이고 쌓여갑니다. 가졌다 하여 여섯 끼를 먹을 수..
2023.01.01 -
새해아침,행복을 꿈꾸며. 이채
새해 아침 우리는 사랑 아닌 것 기쁨 아닌 것 어디에도 없어라 찬물로 세수하고 가지런히 앉은 아침이여! 솟아오르는 희망으로 천길 바다 속 햇살을 길어 올리네 풀 먹인 마음으로 다듬질한 생각으로 때때옷 입고 세배하는 아침이여! 말씀마다 뜻 있고 뜻마다 삶의 양식 되니라 한 알의 씨앗으로 한 해의 꿈을 심는 아침이여! 믿음의 뿌리마다 곧고 반듯한 기도가 되니라 새해 아침 우리는 소망 아닌 것 행복 아닌 것 어디에도 없어라
2023.01.01 -
벙어리 장갑
여름내 어깨순 집어준 목화에서 마디마디 목화꽃이 피어나면 달콤한 목화다래 몰래 따서 먹다가 어머니한테 나는 늘 혼났다 그럴 때면 누나가 눈을 흘겼다 ㅡ겨울에 손 꽁꽁 얼어도 좋으니? 서리 내리는 가을이 성큼 오면 다래가 터지며 목화송이가 열리고 목화송이 따다가 씨아에 넣어 앗으면 하얀 목화솜이 소복소복 쌓인다 솜 활끈 튕기면 피어나는 솜으로 고치를 빚어 물레로 실을 잣는다 뱅그르르 도는 물렛살을 만지려다가 어머니한테 나는 늘 혼났다 그럴 때면 누나가 눈을 흘겼다 ㅡ손 다쳐서 아야 해도 좋으니? 까치설날 아침에 잣눈이 내리면 우스꽝스런 눈사람 만들어 세우고 까치설빔 다 적시며 눈싸움한다 동무들은 시린 손을 호호 불지만 내 손은 눈곱만큼도 안 시리다 누나가 뜨개질한 벙어리장갑에서 어머니의 꾸중과 누나의 눈흘..
2023.01.01 -
낡은 의자를 위한 저녁기도. 정호승
그동안 내가 앉아 있었던 의자들은 모두 나무가 되기를 더이상 봄이 오지 않아도 의자마다 싱싱한 뿌리가 돋아 땅속 깊이 실뿌리를 내리기를 실뿌리에 매달린 눈물들은 모두 작은 미소가 되어 복사꽃처럼 환하게 땅속을 밝히기를 그동안 내가 살아오는 동안 앉아 있었던 의자들은 모두 플라타너스 잎새처럼 고요히 바람에 흔들리기를 더이상 새들이 날아오지 않아도 높게 높게 가지를 뻗어 별들이 쉬어가는 숲이 되기를 쉬어가는 별마다 새가 되기를 나는 왜 당신의 가난한 의자가 되어주지 못하고 당신의 의자에만 앉으려고 허둥지둥 달려왔는지 나는 왜 당신의 의자 한번 고쳐주지 못하고 부서진 의자를 다시 부수고 말았는지 산다는 것은 결국 낡은 의자 하나 차지하는 일이었을 뿐 작고 낡은 의자에 한번 앉았을 뿐 작고 낡은 의자에 한번 앉..
2022.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