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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함민복
그림자 - 함민복 금방 시드는 꽃 그림자만이라도 색깔 있었으면 좋겠다. 어머니 허리 휜 그림자 우두둑 펼쳐졌으면 좋겠다. 찬 육교에 엎드린 걸인의 그림자 따뜻했으면 좋겠다. 마음엔 평평한 세상이 와 그림자 없었으면 좋겠다. - 시집 《말랑말랑한 힘》(2005) 수록
2022.04.20 -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 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
2022.04.20 -
그샘. 함민복
네 집에서 그 샘으로 가는 길은 한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새벽이면 물 길러 가는 인기척을 들을 수 있었지요. 서로 짠 일도 아닌데 새벽 제일 맑게 고인 물은 네 집이 돌아가며 길어 먹었지요. 순번이 된 집에서 물 길어 간 후에야 똬리 끈 입에 물고 삽짝 들어서시는 어머니나 물지게 진 아버지 모습을 볼 수 있었지요. 집안에 일이 있으면 그 순번이 자연스럽게 양보되기도 했었구요. 넉넉하지 못한 물로 사람들 마음을 넉넉하게 만들던 그 샘가 미나리꽝에서는 미나리가 푸르고 앙금내리는 감자는 잘도 썩어 구린내 훅 풍겼지요. - 시집 《말랑말랑한 힘》(2005) 수록
2022.04.20 -
동창이 밝았느냐. 남구만
동창(東窓)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놈은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
2022.04.20 -
이니스프리의 호도. 예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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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20 -
이니스프리의 호도 윌리엄 예이츠
일어나 지금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 가지 얽고 진흙 발라 조그만 초가 지어 아홉 이랑 콩밭 일구어, 꿀벌 치면서 벌들 잉잉 우는 숲에 나 홀로 살리 거기 평화 깃들어, 고요히 날개 펴고 귀뚜라미 우는 아침 놀 타고 평화는 오리 밤중조차 환하고, 낮엔 보랏빛 어리는 곳 저녁에는 방울새 날개 소리 들리는 거기 일어나 지금 가리, 밤에나 또 낮에나 호수물 찰랑이는 그윽한 소리 듣노라 맨길에서도, 회색 포장길에 선 동안에도 가슴에 사무치는 물결 소리 듣노라
2022.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