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동백 꽃을 보며. 도종환
2024. 12. 14. 00:00ㆍ시와글
내가 다만 인정하기 주저하고 있을 뿐
내 인생도 꽃잎은 지고
열매 역시
시원치 않음을 나는 안다
담 밑에 개나리 환장하게 피는데
내 인생의 봄날은 이미 가고 있음을 안다
몸은 바쁘고 걸쳐놓은 가지 많았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거두어들인 것 없고
마음먹은 만큼 이 땅을
아름답게 하지도 못하였다
겨울바람 속에서 먼저 피었다는 걸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나를 앞질러가는 시간과 강물
뒤쫓아오는 온갖 꽃의 새순들과
나뭇가지마다 용솟음치는
많은 꽃의 봉오리들로 오래오래
이 세상이 환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선연하게도 붉던 꽃잎 툭툭 지는 봄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