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가는 길. 김현태

2023. 1. 17. 22:36시와글





이른 아침에 우체국에 갑니다.



출판사에서 받아 온 시집과

밤새 쓴 편지 한 장을

자전거에 싣고 우체국에 갑니다.



아침 햇살이 신호등이 걸릴 때마다,

내 생이 브레이크를 질끈 잡을 때마다

행여, 자전거 뒷칸에 매단

누우런 봉투가 아파하지 않을까,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우체국은 항상 사랑 향기가 납니다.

그리움 향기가 가득합니다

아직도 이 세상에는 말 못할

그리움이 더 많은가 봅니다

​내 이름보다도 그대 이름이

크게 적힌 봉투를 저울에 올려놓습니다

몇 그램이나 나갈까,

우체국 아가씨는

방황하는 저울 바늘의 끝을 바라봅니다.

문득, 봉투의 무게가

내 사랑의 무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괜스레 두 볼이 바알갛게 달아오릅니다.



며칠 후면,

지구의 한 모퉁이에 닿을

내 그리움의 편린들

악어 입 같은 우체통에 고이고이

묻어 두고 자전거에 몸을 싣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겨울바람이 자전거 앞바퀴에 걸려

치즈처럼 얇게 잘리었는지,

바람 끝이 맵습니다

가슴팍이 왈칵, 시려 옵니다.

'시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록차를 마시는 때. 유안진  (0) 2023.01.20
안개꽃. 정호승  (0) 2023.01.18
버리지 마라. 이비단모래  (0) 2023.01.17
낙엽이 가는 길. 이비단모래  (0) 2023.01.17
별에서 온 그대. 고규윤  (0) 2023.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