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호 시인 시 두편

2022. 8. 13. 19:09시와글


1.된장이야기


보름달, 빛으로 익힌 된장
한 숟갈 떠서 담는다
거기서 무슨 우스운 얘기를 들어서였을까
히히히 뜻 없이 웃음 한 입 꿀꺽 삼킨다

겨우내 코를 막고 씩씩거리던 아이도
토장국 한 그릇 더 주세요 하고
옷마다 메주 냄새 다 밴다고
신경질 부리던 누이동생도
언제 그랬냐는 듯 밥 말아먹는다

히히히 자다가도 웃음을 흘린다
거기서도 무슨 재미난 얘기들 꽃피우는지
보름달, 빛으로 빚은 된장
한 그릇 퍼 담으면
자갈돌을 물길을 만들고
그리운 것들은 다리를 만든다.
(02강원 신춘)



2. 아름다움 하나를 위하여-메주



함박눈 펑펑펑 내리는 저녁, 난
눈 코 입 문드러진 문둥이가 되는 거야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가 그랬듯이
몸에 스스로 큰 상처를 내
욕망의 결절을 다 뱉어내고
누룩빛으로 마음껏 배불리는 거야 난
손발톱 하나 둘쯤 짓물러 떨어지고
그래서 겉으로 보이는 삶이 아닌
썩어 문둥문둥 해지더라도
썩은 몸 삼켜 하아얀 눈꽃을 피우는 거야
가장 높은 마음은 스스로 썩어지는 데 있으니까
몸 하나씩 버리는 이 징역을 견디는 거야
징역 끝에
우리들 삶의 뒤란, 그 어두운 항아리 속에서
뜨뜻한 불길로 활활 몸 사르는
그 아름다움 하나를 위하여 난
새끼줄에 열십자로 묶인 예수가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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