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자리. 이병률
2022. 6. 11. 12:28ㆍ시와글
깊은 밤에
집으로 가는 길에 집 앞에
한 사내가 굵은 나뭇가지 하나를
두 손으로 붙들고 서 있다
할 말을 전하려는 것인지
의지하는 것인지
매달리는 사실은 무겁다
사내가 나의 집 한 층 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도
사내가 몇 번 더 나무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았다
손을 놓치지 않으려는지
나뭇가지는 손이 닿기 좋게 키를 내려놓기까지 했다
어느 밤에
특히 오늘 같은 밤에는
그 가지가 허공에 팔을 뻗어
말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을
새를 날려 보냈는지
아이를 잃어버렸는지 모르겠는 위층 사내도
나처럼 내어다보고 있을 것이다
그 가지 손끝에서 줄을 그어 나에게 잇고
다시 나로부터 줄을 그어 위층의 사내에게 잇다가
더 이을 곳을 찾고 찾아서 별자리가 되는 밤
척척 선을 이을 때마다
척척 허공에 자국이 남으면서
너로 놓치지 말고 자자는 듯
사람 자리 하나가 생기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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