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라이너 마리아 릴케
2024. 10. 28. 00:00ㆍ시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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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드리우시고,
들판 위에 많은 바람을 풀어놓으소서.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해 주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더는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후로도 혼자 남아서
밤새워, 이 책 저 책 뒤적이며,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그러다가 바람에 불려 나뭇잎이 떨어져 뒹굴 때
가로수길을 이리저리 헤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