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편지. 서정윤

2022. 11. 16. 14:52시와글







하느님 당신은
당신의 일을 하고
나는 나의 일을
합니다.

하늘 가득
먹구름으로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건 당신의 일이지만
그 빗방울에 젖는 어린
화분을 처마 밑으로
옮기는 것은 나의 일,

하늘에 그려지는
천둥과 번개로 당신은
당신이 있다는 것을 알리지만
그 아래 떨고 있는 어린 아이를
안고 보듬으며 나는 아빠가
있다는 것으로 달랩니다.

당신의 일은
모두가 옳습니다만
우선 눈에 보이는 인간적인
쓸쓸함과 외로워하는 아직
어린 영혼을 위해 나는
쓰여지고 싶어요.

어쩌면, 나는
우표처럼 살고 싶어요
꼭 필요한 눈빛을 위해
누군가의 마음 위에 붙지만
도착하면 쓸모 다하고 버려지는
우표처럼 나도 누군가의 영혼을
당신께로 보내는 작은 표시가
되고 싶음은 아직도 욕심이
많음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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