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박목월

2022. 7. 9. 15:18시와글




지상(地上)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 문 반(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 문 삼(六文三)의 코가 납짝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壁)을 짜 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憐憫)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 문 반(十九文半).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 문 반(十九文半)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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