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골 상자. 강기원
2022. 6. 24. 08:20ㆍ시와글
1
내게 상자가 있었어
다락방 같은 뚜껑을 열면
음악이 흘러나오던
태엽 감긴 새초롬한 무희가
앙증맞게 춤추던
일곱 난쟁이들이
요기조기 숨어 있던
빠진 치아들이
달그락거리던
오르골 상자
어느 날
뚜껑을 열어도
음악이 흐르지 않고
태엽을 감아줘도
두 팔 늘어뜨린
작은 소녀가 꼼짝하지 않을 때
난 어른이 되어 있었지
2
상자 속에 내가 있어
누군가 뚜껑 열 때까지
깜깜해 깜깜해
외마디 소리도 없이
웅크려 있는
썩은 사과를 먹고도
끄떡없는
태엽을 감아주지 않아도
시계 소리에 맞춰
튀어 오르듯 일어나
제자리에서 맴도는
벙어리에 소경에 귀머거리인
그래도 웃는 무희
벌레 먹은 젖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의 귀여운 일곱 연인들은
ㅡ 《시와상상》 2007.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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