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정호승

2022. 6. 23. 12:22시와글

내 목숨을 버리지 않아도
천지에 냉이꽃은 하얗게 피었습니다

그 아무도 자기의 목숨을 버리지 않아도
천지는 개동백꽃으로 붉게 물들었습니다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무심코 새 한 마리가 자리를 옮겨가는 동안

우리들 인생도 어느새 날이 저물고
까치집도 비에 젖는 밤이 계속되었습니다

내 무덤가 나뭇가지 위에 앉은
새들의 새똥이 아름다운 봄날이 되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보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들이 더 아름다웠습니다

'시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울의 예수. 정호승  (0) 2022.06.24
오르골 상자. 강기원  (0) 2022.06.24
시월. 황동규  (0) 2022.06.23
그 고독을 아는 사람은 안다. 공석진  (0) 2022.06.22
순간의 꽃. 고은  (0) 2022.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