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나무. 최기순

2025. 3. 26. 00:00시와글



목련나무는
그 집에 일 년에 한 번 불을 켠다
사람들은 먼지가 쌓여 어둠이 접수해버린 그 집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목련꽃이 피어있는 동안만 신기하게 쳐다본다

목련나무는 보았을 것이다
아이들이 타고 놀던 목마와
버려지는 낡은 의자
플라스틱 물병과 그릇들
장난삼아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던 손과
방충망이 저절로 찢어지던 소리
늘어진 TV안테나 줄을 타고
근근이 피어오르는 나팔꽃을 뒤로하고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아파트를 바라보는
기대에 찬 시선들을

드디어 두꺼비집 뒤에서
도둑고양이가 비명을 지르며 튀어나오고
집이 삭은 관절을 스스로 부서뜨리며 우는 것을
제 그늘에 몸을 숨기고 다 보았을 목련나무는
해마다 봄이 되면 미친 듯 제 속의 불꽃들을 밀어 올려
저렇게 빛나는 불송이들을 매달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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