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를 생각하는데 눈이 왔다. 김용택
2024. 12. 22. 00:00ㆍ시와글
어쩌다가 깨끗한 시 한 편을 쓰고 나면
한없이 너그러워질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나무에게도 기대지 않는다.
그런 자유도 있다.
시인에게 의심만큼 나쁜 것도 없다.
진실은 두렵다.
정직은 무겁다.
자기 신뢰는 시인의 생명임을 안다.
정직이 인정에 기댄 사사로운 인문 용어가 아니라
사회적인 제도의 함의 개념이 될 때
우리 사회는 소모적인 혼란이 수습되면서
성숙한 민주시민사회로 진입할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바람을 등지고 앉아 있을 때
눈이 왔다.
삶은 눈보라다.
등을 돌아온 눈송이들이 어디 앉지 못하고
허공에서 분분하다.
내 삶이 서러울 때다.
눈들이 내가 걸어온 발자국을 용서하고
내 시가 나를 설득할 수 있을까.
내 시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기댈 수 있을까에,
나는 늘 괴롭다.
김용택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 좋겠어요.](파주: (주)난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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