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없다. 오탁번
2024. 10. 31. 00:00ㆍ시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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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련리 한치마을
큰 느티나무 앞 폐교에는
바람이 불고 낙엽이 날리고
새소리만 들리는 적막뿐이었다
오석烏石에 새긴
'백운국민학교 애련분교'가
번개 치듯 내 눈에 들어왔다
교실 세 칸에 작은 사택
다 주저앉은 숙직실과
좁은 운동장이
옛동무처럼 낯익었다
백운면의 조선시대 지명을 살려
'원서헌'遠西軒이라 이름 짓고
해 뜨면 일어나고
해 지면 잠을 잔다
먼 서녘, 원서는
종말이 아니라
새날의 시초라고
굳이 믿으면서
스무 해 되도록
이러구러 살고 있다
서울 친구들은
낙향해서 괜히 고생하는 내가
좀 그래 보이겠지만
수도가 터지고
난방이 잘 안 돼도 일없다
두더지가 잔디밭을 들쑤셔도
사람보다
멧돼지와 고라니가
자주 와도 다 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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