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래기를 삶으며. 강우식

2023. 1. 27. 12:59시와글





아내는 김장을 하면서
남은 채소들을 모아 엮어
아파트 베란다에 매달았다.

시래기 타래들이 20층
허공에 있는 것이 신기해선지
겨울 햇살도 씨익 웃다 가고
바람도 장난꾸러기처럼
그 몸체를 마구 뒤흔들었다.

오늘은 고요히 눈이 내리고
왠지 어릴 때 어머니가 끓여 주던
시래깃국 생각이 간절하여
배추잎, 무청들을
푹 삶아서 푸르게 살아난
잎새들의 겉껍질을 벗긴다.

겨울 해는 내 인생처럼
짧기만 한데

나이 들수록 돌아가고픈
옛날이 있다.

- 강우식,『별』(연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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