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마을. 오탁번

2023. 12. 11. 00:00시와글

건너 마을 다듬이 소리가

눈발 사이로 다듬다듬 들려오면

보리밭의 보리는 봄을 꿈꾸고

시렁 위의 씨 옥수수도

새앙쥐 같은 아이들도 잠이 든다



꿈나라의 마을에도 눈이 내리고

밤마실 나온 호랑이가

달디단 곶감이 겁이 나서

어흥 어흥 헛기침을 하면

눈 사람의 한쪽 수염이

툭 떨어져 숯이 된다



밤새 내린 눈에 고샅길이 막히면

은하수 물빛 어린 까치들이

아침 소식을 전해 주고



다음 빙하기가 만년이나 남은

눈 내리는 마을의 하양 지붕이

먼 은하수까지 비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