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일기. 박서영

2022. 11. 27. 19:16시와글





당신을 만난 후부터 길은 휘어져
오른쪽으로 가도 왼쪽으로 가도 당신을 만나요

길 안에는 소용돌이가 있고 소실점도 있지만
뒤섞여버린 인생과 죽음과
사랑과 체념이 있지만

서로에게 닿을 듯이 멀어지는 타인들의 거리에서

당신이 사라져 버린 후에 나는 전율하는 모든 순간들에게
묵념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어요

내가 고요히 슬픔을 알아갈 때
머리 위엔 뭉클한 것들이 내려앉고
내 신발 속엔 수수께끼를 푸는
착한 천사들이 다녀가기도 했어요

내가 길 끝의 낭떠러지로 가면
천사들은 나를 업고 달려가 방에 눕혀놓고 했지요

책상에는 농담 같은 일기와
진담 같은 詩 몇 편

언젠가 당신은 눈 먼 거미의 호주머니에서
내 유서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이해하려 해봤자 이해할 수없는 내용들로 가득한

그것은 우리가 물어뜯고 해체한 시간이에요
나에게 온 적이 없는 당신의 시간이에요
다 알고 있으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문장을 쓰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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