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그린 사랑. 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2022. 11. 8. 18:55시와글













봄이

그려지는가 싶더니

여름이 지나가고



산마다

단풍잎 물들이는 가을이

왔나 싶더니



겨울이 머물러 있는 이 마을엔

달과 별들도 부러워한다는

금실 좋은

노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밭에 일하러 나간다는

할아버지의 등 뒤엔 지게가 아닌

할머니가 업혀져 있었는데요



“임자

밖에 나오니 춥지 않아?“



“영감 등이 따뜻하니까 춥지 않네요”



앞을 못 보는

할머니를 업고 다닌다는 할아버지는



“임자

여기서 앉아 쉬고 있어

밭에 씨 좀 뿌려놓고 올테니...“



씨앗 한 움큼을 던져 놓고

할머니 한번 쳐다보는 것도 모자라



“초가 삼간

집을 짓는 내 고향 정든 땅“



구성진 노래까지 불러주고 있는 모습에



이젠 할머니까지 손뼉을 치며

따라 부르고 있는 게 부러웠는지

날아가던 새들까지

장단을 맞추어주고 있는 걸 보는

할아버지의 눈가는

촉촉이 젖어오고 있었는데요



“나만 볼 수 있는 게 미안하다며...”



눈물짓고 있는 할아버지는

봄처럼 푸른 새싹을

여름 햇살에 키워



가을을 닮은 곡식들로

행복을 줍던 날들을 뒤로한 채

찬 서리 진 겨울 같은 아픔을

맞이하고 말았는데요



고뿔이 심해 들린 읍내병원에서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소리에

할머니 몰래 진찰을 받고 나오는

할아버지의 얼굴엔

하얀 낮달이 앉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걸

할머니에게 말하지 않은 채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산과 들로 다니며

행복을 줍고 있었지만

갈수록

할머니를 업기에도

힐체어를 밀기에도

힘에 부쳐가는

시간을 들키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만 있었습니다



노부부의

앞마당 빨랫줄에 매달려

놀고 있던 해님이

달님이 불러서인지

점점 멀어지고 있을 때



“임자

됐어 됐다구“



“읍에 갔다 오더니 뭔말이래요?“



“그동안 고생했어.”



할머니에게

망막 기증을 해준다는 사람이

나섰다며

봄을 만난 나비처럼

온 마당을 들쑤시고 다니고 있는

할아버지의 애씀이 있어서인지

시간이 지나

할머니는 수술대에 누워 있습니다



“임자

수술 잘될 거니까 걱정말어”



“그래요...

이제 나란히 손잡고 같이 걸어갑시다“



이다음에

저승에서 만나면

꼭 그렇게 하자는 그 말은

차마 하지 못한 채

돌아서는 할아버지가 떠나시면서

남기고 간 선물로 눈을 뜬 할머니는

펼쳐진 세상이

너무나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시더니

이내 할아버지를 찾습니다



“임자

이제 그 눈으로

오십 평 생 못 본 세상

실컷 보고 천천히 오구료

세상 구경 끝나고

나 있는 곳으로 올 땐

포근한 당신 등으로 날 업어

떨어져 있던 시간만큼

못다 한 이야기나 해주구려“



비록 멀어졌지만

우린 함께

세상을 보고 있는 거라고~



씌여진

편지를 읽고 난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잠들어 있는 하늘가를 향해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등 뒤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가 더 행복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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