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나태주
2022. 9. 19. 07:40ㆍ시와글

깜깜한 여름밤
저녁밥을 먹고 나서도 쉬지 못하는 어머니는
뒤뜰에다가 멍석을 내어다 깔고 식구들의 빨래를 다림질하고 있었다
때로 어머니는
마음씨 고약한 산적 같은 아버지한테
붙잡혀 와 고생고생하며 살아가는
선녀님이 아닐까 생각하는 때가 있었다
엄니, 나 엄니를 위해서라면
무어든지 될래요
엄니가 돈 많은 사람 되라면 돈 많은 사람 되고
높은 사람 되라면 높은 사람되고 공부하는 사람이든 유명한 사람이든
무엇이든 되어드릴 거예요
물컷 들어갈라
어여 문 닫고
나머지 숙제나 하려무나
그런 날이면 나는 어머니의 진짜 아들이었다 밤하늘의 별들은 이름을 얻지 못하고서도
저들 혼자만의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엄니, 별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네요 그러게 말이다
별들이 우리 애기 주먹만이나 하구나
나는 다 자란 뒤에도
어머니가 애기라 불러주는 것이 은근히 속으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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