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쓰여진 시. 윤 동주

2022. 6. 10. 08:34시와글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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