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자 하고,잤다. 김용택
2024. 12. 29. 00:00ㆍ시와글
아침때 쑥을 뜯으러 갔다.
다섯 자루 정도 뜯었다.
뜯는다고 하지만 키가 커서 낫으로 벤다.
쑥을 다듬고 있는데 꾀꼬리가
이 산 저 산에서 또렷하게 운다.
앞산에서 한 마리가 울면 뒷산에서 화답한다.
시를 잊고 산다.
저 산천이 시다.
산천이 저리 찬란하고 눈이 부신데,
바람이 저렇게 부는데,
새로 길어난 나뭇가지들이
봄바람에 저렇게 흔들리는데,
시는 뭐 하러 쓰나.
시를 어따 쓰나.
내 하루 삶의 어디다가 시를 쓰나.
어느 빈자리가 있기는 하나.
새들이 저리 날아다니는데.
내 시를 어디다가 쓰나.
인간에게는 최소한도가 없다.
자자 하고 바로 잤다.
김용택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 좋겠어요.](파주: (주)난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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