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쯤은. 김부조
2024. 10. 21. 00:00ㆍ시와글
오늘 하루쯤은
일상을 밀어낸 느슨한 생각과
헐렁한 옷차림이 지어 낸 표정으로
베란다 창을 다투어 뚫고 스며드는
햇살의 길이로만 시간을 가늠하며
느긋한 아침의 시작으로 어긋난
식탁의 무딘 질서가
하루 두 끼의 식사로도 너끈히
바로 설 수 있음을 기꺼이 인정하고
누군가로부터도 적당히 멀어져
그 사람의 버거운 기억을
한 꺼풀이나마 벗겨 주고
하루쯤은
빛바랜 문패가 떨어져 나가
그 누구도 나를 찾을 수 없게 되는
해묵은 주소록이 열리지 않아
내가 그 누구도 찾아 나설 수 없게 되는
바로 그런 날
허공처럼
말갛고 허허롭게 머물다
고요에 지쳐 쓰러질 바로 오늘
하루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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