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 정지용
2022. 8. 26. 21:26ㆍ시와글
장미꽃처럼 곱게 피어가는 화로에 숯불
입춘 때 밤은 마른 풀 사르는 냄새가 난다.
한겨울 지난 석류 열매를 쪼개어
홍보석 같은 알을 한 알 두 알 맛보노니,
투명한 옛 생각, 새론 시름의 무지개여,
금붕어처럼 어린 여릿여릿한 느낌이여.
이 열매는 지난해 시월 상달, 우리 둘의
조그만한 이야기가 비롯될 때 익은 것이어니,
작은 아씨야, 가녀린 동무야, 남몰래 깃들인
네 가슴에 졸음 조는 옥토끼가 한 쌍.
옛 못 속에 헤엄치는 흰 고기의 손가락, 손가락.
외롭게 가볍게 스스로 떠는 은(銀)실, 은(銀)실.
아아 석류알을 알알이 비추어 보며
신라 천 년의 푸른 하늘을 꿈꾸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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