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정지용

2022. 6. 16. 18:50시와글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게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내 마음)
파란 하늘 빛이 그리워 (음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https://youtu.be/20N7dsWMRd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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